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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연표

대구야... | 2009/02/16 16:16 | Posted by 오이군(꼬마미르)
대구 지역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등의 유물과 유적 등을 살펴볼 때 대략 5천년 전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취락지는 세력확장을 통하여 AD 1세기경 달구불(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로 일컫던 부족국가로 성장하였으며, 그 경계는 지금의 신천에서 성서와 금호강까지로 추정됩니다.
'大丘'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주·군· 현의 명칭을 한자명으로 고칠 때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후 조선 정조 4년(1780년)에 '大邱'로 바뀌었습니다.
1601년에는 경상도의 행정, 산업, 군수를 통할하는 경상감영이 설치되어 정치·경제·문화 전분야에 걸쳐 영남지역의 생활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일제침략이 시작되던 1907년 대구의 서상돈이 중심이 되어「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서」란 격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국채보상운동」과 1960년 4·19 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2·28 학생의거」등은 나라를 위해 중요한 고비마다 빛나는 향도의 역할을 다해 온 대구시민의 긍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1981.7.1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월배·성서·공산지역을 비롯하여 칠곡과 안심, 고산지역을 편입하여 시역이 454.9㎢로 확장된 데 이어 1995. 3. 1 낙동강을 낀 달성군 전역을 편입하면서 시역이 885.6 ㎢로 크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1995. 1. 1 대구광역시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해 7월 1일 민선시정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가 실시되었으며, 희망찬 2000년대의 세계적인 「섬유패션도시」, 쾌적하고 푸른「숲의 도시」를 꿈꾸는 250만 시민들이 세계 속의
일류도시로의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대구의 연표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세요.
자료출처 : 대구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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